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

2008년 12월 로버트 네프 선생과 함께 [서양인의 조선살이]를 푸른역사에서 출판했다.

이 책은 구한말 한국에 체류했던 서양인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시공간은 제한적이지만 내용은 포괄적이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시기부터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주로 서울에서 거주했던 서양인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이 시기에 서양인들의 삶은 첫째, 다양한 국적을 지닌 서양인들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경쟁과 협력으로 엮인 일상의 궤적 둘째, 서양인들이 숨기고 싶었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 셋째,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등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다.

구한말 서양인들은 외교, 선교, 교역, 교육 또는 여행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입국해 서울, 부산, 제물포 등지에서 독특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들의 일부는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와 교육에 종사했고 또 다른 이들은 자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혹은 고종의 고문으로 한국의 근대사에 뛰어들었다. 그밖에 마치 하이에나처럼 이권을 찾아 극동의 나가사키, 상하이, 톈진 등을 방랑하는 서양의 ‘낭인’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에게 한반도는 새로운 개척지이자 시장이며 삶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 경쟁과 협력, 사랑과 증오는 이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었다.

구한말 한반도에서 서양인의 일상은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간행된 대부분의 관련 서적들은 서양인이 한국을 방문해서 느낀 점이나 여행 중에 보고 들은 내용들 즉, 주로 관찰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그것은 구한말 서양인의 삶의 진정한 궤적을 보여주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서양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이 한국에서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서양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여가를 보내며 질병을 치료하고 동료들과 겪었던 희로애락을 추적하고 있다.

구한말 서양인들 중에는 새로운 한국을 창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헌신적인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전직이 의심스러운 사람도 있었고 협잡꾼에다 술주정뱅이 공사도 있었다. 다양한 군상이 어울려 그들만의 집단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집단 속에는 기회를 만들거나 이용하며 이권과 목표를 찾아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다. 남녀 간의 사랑과 질투, 권력을 위한 경쟁과 협력, 고종은 물론 저자거리의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한 사업과 사기의 성공과 실패, 한반도를 둘러 싼 열강의 대립 등 이 책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구한말 서양인들의 뒷이야기들을 전하고자한다.

이 책은 서양인의 일상은 물론 서양인이 본 한국과 한국인의 일상도 소개하고 있다. 서양인이 본 한국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체류 목적에 따라서도 그러했지만 교육 여건과 환경에 따라 한국과 한국인의 일상은 각기 다르게 보였다. 특이한 것은 상당 수 서양인들이 한국의 자연환경과 한국인의 성격에 대해 많은 호기심과 애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매료되었고 조랑말, 고양이, 진달래 등과 같은 한반도의 동식물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또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서양인들은 서구문명의 중요한 매개자이었다. 이들은 틀니, 맥주, 스케이트와 같은 일상용품부터 자전거, 기차,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물을 소개했고, 이를 접한 한국인들의 놀라움과 충격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필자들은 구한말 서양인들의 일상을 가급적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해외자료에만 의존했다. 서양인들이 쓴 자서전 및 여행기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발행된 일간지 그리고 알렌 및 포크문서 등 다양한 필사본을 이용해 이 책을 서술한 것이다. 특히 우리들은 아직 국내에 소개가 안 된 허드문서와 그레이문서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그들의 후손과 인터뷰를 통해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들은 초창기 항공기 사진이나 서울과 제물포의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사진들을 확보해 이 책에 싣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서양인들이 남긴 자료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한 바람에 일부 사료와 사실에 대해서는 잘못된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필자들은 구한말 외교문서의 수집과 선교사들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문화를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사의 발굴이라는 공통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들은 그동안 정치사 혹은 외교사로 일관되어 온 구한말 국가 간의 관계사가 이 책을 통해 보다 친밀하고 흥미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우리들은 이 책을 집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평소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연세대학교의 유영익 교수님을 비롯해 이주영, 안드레이 랑코프, 웨인 패터슨, 로스 자롭 교수님과 연암문고의 이용을 도와준 명지대학교의 윤병주 중앙도서관장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곁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와준 가족들 그리고 출판과 편집을 맡아 준 푸른역사의 백승종 박사님과 정진라 선생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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